
1989년 캡콤이 아케이드로 출시한 파이널 파이트지금까지 게임추억에서 다뤘던 오락실 게임들은 대부분 처음 등장했을 때의 기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신작 게임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뒤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파이널 파이트는 조금 다르다.
내 기억 속 오락실에는 처음부터 이 게임이 있었다.
천지를 먹다 2를 처음 봤던 시절보다도 전부터 오락실 한쪽을 지키고 있었고, 오락실에 가면 자연스럽게 한 번씩 플레이하던 게임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새로 생겨서 사람들이 줄을 서는 가게라기보다, 동네에 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오래된 맛집 같은 게임이었다.
스트리트 파이터가 될 뻔했던 파이널 파이트
파이널 파이트는 캡콤이 1989년 아케이드로 출시한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이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부터 파이널 파이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게임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개발 초기에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후속작으로 기획됐고, 한때 ‘Street Fighter ’89’라는 이름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이후 개발 방향이 바뀌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파이널 파이트가 됐다.
당시에는 더블 드래곤 같은 횡스크롤 액션 게임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고, 파이널 파이트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게임을 따라가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캐릭터, 여러 명의 적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전투, 적을 붙잡아 때리고 던지는 액션.
지금은 벨트스크롤 액션에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요소들이지만 파이널 파이트는 이런 재미를 일찌감치 제대로 보여준 게임이었다.
이름보다 모습으로 기억했던 세 명의 캐릭터

코디, 가이, 해거. 어린 시절에는 이름보다 모습과 기술로 기억했던 캐릭터들.파이널 파이트에는 코디, 가이, 해거 세 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이름까지 외우면서 게임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자주 골랐던 것은 빨간 옷을 입은 캐릭터였다.
이유도 단순했다.
공격이 빨랐다.
지금에야 그 캐릭터의 이름이 가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그냥 빨간 옷 입고 주먹 빠른 캐릭터였다.
해거 역시 이름보다는 기술로 기억한다.
적을 붙잡은 상태에서 점프한 뒤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 기술이 있었는데, 우리끼리는 이걸 ‘호박찍기’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우리끼리 '호박찍기'라고 불렀던 해거의 잡기 기술.적 하나 붙잡아서 호박찍기 한 번 제대로 들어가면 그 손맛이 꽤 좋았다.
그리고 코디.
코디를 선택했던 이유는 조금 황당하다.
당시에는 100원을 넣고 게임이 시작되면 캐릭터 선택 화면이 나오기도 전부터 버튼을 막 누르곤 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게 습관이었다.
그러다 캐릭터 선택 화면이 나오면서 코디가 선택돼 버리면 그냥 코디로 했다.

파이널 파이트의 주인공 코디. 어린 시절에는 캐릭터 선택 전부터 버튼을 누르다가 얼떨결에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주인공은 코디였는데,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그냥 ‘어쩌다 선택되면 하는 캐릭터’였다.
지금 자료를 다시 찾아보면 세 캐릭터의 성격은 꽤 명확하다.
가이는 빠른 스피드가 특징이고, 해거는 강력한 힘과 잡기가 특징이며, 코디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캐릭터다.
이름은 제대로 몰랐어도 빨간 옷의 캐릭터가 빠르다는 느낌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셈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아무나 못 했던 ‘얍실이’
파이널 파이트의 기본 조작은 단순하다.
공격하고, 점프하고, 적을 붙잡아 때리거나 던진다.
그런데 당시 잘하는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일종의 고급 기술을 ‘얍실이’라고 불렀다.
적에게 평타를 몇 번 넣은 다음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허공에 공격을 한 번 흘린 뒤, 다시 적을 보고 공격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마지막 공격으로 적을 날려버리지 않고 다시 연속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파이널 파이트의 무한 콤보로 잘 알려진 기술이다.
잘하는 형들이 사용하면 적이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 계속 얻어맞았다.
물론 나는 못했다.
어렸으니까 손이 안 따라줬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플레이하면서 문득 생각났다.
‘지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과는 내가 얻어터졌다.
아무래도 나이의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첫 스테이지는 할 만했는데
내 기억 속 파이널 파이트의 난이도는 조금 이상하다.
첫 스테이지만 놓고 보면 사실상 튜토리얼에 가까웠다.
적당히 공격 버튼을 누르고, 적을 잡아 던지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진행하다 보면 어린 나도 어떻게든 첫 스테이지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좀 멀리 가겠는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2스테이지에 들어가면 게임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진다.
특히 지하철 구간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거의 통곡의 벽이었다.
보스까지 가기는커녕 대부분 여기에서 죽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2스테이지 보스인 소돔을 제대로 상대했던 기억조차 거의 없다.
수십 년 뒤에 발견한 드럼통 휴게소
어린 시절에는 지하철 구간을 쉽게 넘어갈 방법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에서 파이널 파이트 영상을 보다가 재미있는 공략 하나를 알게 됐다.
지하철 마지막 부분에 있는 드럼통을 부수지 않고 그 위에 올라가 버티는 방법이었다.

최근 유튜브를 보고 알게 된 지하철 드럼통 공략. 어린 시절에는 이런 방법이 있는지도 몰랐다.이번에 다시 플레이하면서 생각난 김에 직접 해봤다.
드럼통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이거 내가 하는 버전에서는 패치돼서 안 되는 거 아냐?’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봤다.
결국 됐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죽었던 지하철을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드럼통 위에서 가만히 쉬면서 넘어갔다.
조금 억울하긴 했다.
소돔은 영업이익을 위해 만든 보스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어린 시절 넘지 못했던 지하철을 지나 드디어 2스테이지 보스 소돔을 만났다.
그리고 맞아봤다.
아프다.
정도가 아니라 정말 아프다.
이번에 다시 플레이해보니 공격을 몇 번 제대로 허용하는 것만으로 체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플레이했을 때는 세 대 정도 제대로 맞으니 그대로 쓰러졌다.

어린 시절 지하철을 넘지 못해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던 2스테이지 보스 소돔. 지금 다시 싸워봐도 공격력이 살벌하다.여기서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당시 오락실 게임을 운영하는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플레이어가 100원을 넣자마자 몇십 초 만에 죽어버리는 게임이 꼭 좋은 게임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일단 게임의 재미를 보여줘야 한다.
첫 스테이지에서는 적을 두들겨 패고, 잡아서 던지고, 보스까지 쓰러뜨리면서 충분히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고 나면 슬슬 자신감이 생긴다.
‘나 이 게임 좀 하는데?’
그 상태로 2스테이지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죽는다.
어렵게 지하철을 넘어가도 소돔이 기다리고 있다.
몇 대 맞으면 또 죽는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다시 100원.
물론 실제로 이런 의도로 난이도를 설계했다는 근거는 없다.
그냥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서 든 내 생각이다.
그런데 세 대 맞고 쓰러지고 나니 자꾸 의심이 든다.
소돔은 혹시 게임의 재미보다 오락실 영업이익을 위해 배치된 보스가 아니었을까?
무기는 생각보다 손이 가지 않았다
파이널 파이트에는 칼이나 쇠파이프 같은 무기도 등장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도 무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었고, 이번에 다시 플레이해봐도 개인적으로는 크게 손이 가지 않았다.
적을 직접 잡아서 두들겨 패고 던지는 기본 전투가 워낙 직관적이라 오히려 무기를 들었을 때 평소 리듬이 끊기는 느낌도 있었다.
물론 캐릭터에 따라 무기를 다루는 특징도 있다.
대표적으로 코디는 칼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어쩌다 선택되면 하는 캐릭터’였던 코디에게 나름의 장점이 있었던 셈이다.
미안하다, 코디.
지금 다시 해봐도 손맛은 살아 있다
30년도 더 지난 게임을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낡은 부분이 보일 수밖에 없다.
공격 방식은 지금의 액션 게임과 비교하면 단순하고, 적이 양쪽에서 몰려올 때는 움직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난이도 역시 요즘 게임과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실수 몇 번이 그대로 게임오버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하게 된다.
적에게 주먹이 들어가는 순간의 타격감, 여러 명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두들겨 패는 느낌, 적을 붙잡아 다른 적에게 던지는 재미는 지금 해봐도 확실하다.

여러 명의 적에게 둘러싸인 해거. 단순한 조작이지만 난전에서 오는 손맛은 지금 다시 해봐도 살아 있다.무엇보다 조작이 단순하다.
게임을 켜고 몇 초만 지나면 설명서를 볼 필요도 없이 다시 손이 움직인다.
단순한데 재미있다.
어쩌면 그게 파이널 파이트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고모집에서 다시 만난 또 하나의 파이널 파이트
내 기억 속 파이널 파이트는 오락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중에는 고모집에 놀러 가면 사촌동생이 가지고 있던 패미컴으로 마이티 파이널 파이트를 할 수 있었다.

고모집에 놀러 갈 때마다 미친 듯이 플레이했던 패미컴용 마이티 파이널 파이트.정품 패미컴에 정품 팩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모집에 놀러 갔을 때만 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갈 때마다 정말 미친 듯이 플레이했다.
마이티 파이널 파이트는 아케이드판을 그대로 패미컴으로 옮긴 게임은 아니다.
원작의 캐릭터들을 SD 형태로 바꾸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훨씬 코믹하게 만들었다.

코디, 가이, 해거가 SD 캐릭터로 다시 등장한 마이티 파이널 파이트.여기에 적을 쓰러뜨려 경험치를 얻고 레벨을 올리는 성장 요소까지 들어가 있다.
지금 보면 원작과 상당히 다른 게임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런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고모집에 가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파이널 파이트였다.
캐릭터는 귀여워졌지만 난이도까지 귀여워진 건 아니었다
이번 글을 쓰면서 마이티 파이널 파이트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실행해봤다.
화면을 보니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아케이드판의 크고 거친 캐릭터들은 머리가 큰 SD 캐릭터가 되어 있었고 분위기도 훨씬 가볍다.
일단 1스테이지까지 다시 진행해봤다.
그런데 보스를 만나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게 원래 이렇게 어려웠나?’
생긴 것만 보면 아케이드판보다 훨씬 가볍고 쉬운 게임처럼 보이는데, 막상 플레이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캐릭터는 귀여워졌지만 난이도까지 귀여워진 건 아니었다.

SD 캐릭터와 코믹한 분위기로 바뀐 마이티 파이널 파이트. 하지만 직접 다시 해보니 난이도까지 귀여워진 것은 아니었다.오락실에 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게임
파이널 파이트는 내게 어떤 특별한 날 처음 만난 게임은 아니다.
처음 봤던 날도 기억나지 않고, 처음 100원을 넣었던 순간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파이널 파이트에 대한 내 기억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내가 오락실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곳에 있었다.
새로운 게임들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다른 게임 앞으로 몰려가도 파이널 파이트는 한쪽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가이를 골라 빠르게 주먹을 날렸고, 해거를 골라 적에게 호박찍기를 했다.
게임 시작부터 버튼을 막 누르다가 코디가 선택되면 그냥 코디로 했다.
잘하는 형들이 사용하는 얍실이를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다시 해봤는데 여전히 못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넘기 힘들었던 지하철은 이제 드럼통 위에서 쉬면서 넘어가는 방법도 알게 됐고, 당시에는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던 소돔과도 싸워봤다.
게임을 하는 방법은 예전보다 많이 알게 됐다.
그렇다고 파이널 파이트가 만만한 게임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시 해보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파이널 파이트는 단순히 오래된 게임이라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지금 다시 해봐도 적을 잡고, 때리고, 던지는 기본적인 재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 기억 속 오락실에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새로 생긴 화려한 가게는 아니었지만, 언제 찾아가도 한 판 하고 싶었던 오래된 맛집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