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PC방이지만, 1990년대 후반만 해도 PC방은 새롭게 등장한 놀이공간이었다.
내가 처음 PC방에 갔던 것은 1998년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PC방의 요금은 한 시간에 대략 1,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주로 했던 게임은 바람의나라와 스타크래프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1998년이라는 시기는 꽤 특별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친구들과 PC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던 바로 그 무렵, 한국에서는 PC방이라는 새로운 게임 문화가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카페에서 게임방으로
한국 PC방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중반 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카페를 만나게 된다.
1998년 당시 전자신문은 인터넷카페가 1995년경 등장했고, 오늘날 PC방과 비슷한 형태의 게임방은 1996년 말 무렵 서울 신림동 일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된다고 보도했다.
처음에는 인터넷과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이 여러 대의 컴퓨터로 함께 게임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그 성격도 달라졌다.
1997년에는 게임방 체인과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면서 대학가와 상권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전국적으로 게임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한국의 PC방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이 등장한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는 한국 PC방 문화와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배틀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대전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모여 함께 즐기기에 좋았다.
당시 전자신문 보도를 보면 스타크래프트는 국내 출시 약 6개월 만에 11만 장 이상 판매됐다. 그해 PC게임 시장을 돌아본 기사에서도 스타크래프트의 성공 배경 중 하나로 이른바 ‘게임방 특수’를 언급했다.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를 함께 하기 위해 PC방을 찾았고, 늘어나는 PC방은 다시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PC방과 스타크래프트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당시 PC방을 채우고 있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 하나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바람의나라와 리니지, 온라인게임의 시대
내가 1998년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많이 했던 게임은 바람의나라였다.
나는 당시 리니지를 직접 즐기지는 않았지만, PC방을 둘러보면 리니지를 비롯한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PC방은 단순히 여러 사람이 모여 게임을 하는 장소에서 온라인 세계에 접속하는 공간으로도 변하기 시작했다.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온라인게임의 성장은 PC방과 잘 맞아떨어졌다.
집에 있는 컴퓨터나 인터넷 환경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PC방에 가면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PC방이 특별한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어디를 갈지 정할 때 자연스럽게 PC방으로 향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 세대에게 PC방은 게임을 하기 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놀이터였던 것 같다.
종일권 한 장으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던 날
중학생 때 자주 다니던 PC방에는 재미있는 적립 제도가 있었다.
이용시간을 적립해 일정 시간이 쌓이면 무료 이용시간을 주었고, 많이 쌓으면 하루 종일 PC방을 이용할 수 있는 종일권도 받을 수 있었다.
종일권을 받은 날에는 평소 하던 스타크래프트만 계속하기에는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은 PC방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던 게임들을 하나씩 실행해보며 거의 한 시간씩 돌아가면서 플레이해본 적도 있다.
어떤 게임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콘을 눌러 실행해보고, 재미있으면 조금 더 해보고, 아니면 다음 게임으로 넘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PC방이 일종의 게임 체험장 역할까지 했던 셈이다.
요즘처럼 게임 영상을 쉽게 찾아보거나 원하는 게임을 바로 다운로드해서 체험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PC방은 게임을 하는 곳인 동시에 처음 보는 게임을 발견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전국 골목마다 PC방이 생기다
1990년대 후반부터 PC방은 놀라운 속도로 늘어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산업 관련 자료를 보면 국내 인터넷 PC방은 1998년 약 3,000곳에서 1999년 15,150곳, 2000년 21,460곳, 2001년에는 23,548곳까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인 문화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대학가나 번화가에서 볼 수 있었던 PC방이 어느 순간 학교 주변과 동네 골목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학생들에게는 특히 그랬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PC방 갈래?”
한마디면 그날의 약속이 정해졌다.
누군가는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누군가는 온라인게임에 접속했다. 여러 명이 모이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찾았다.
게임을 하기 위해 돈을 내고 들어간 곳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친구들과 보낸 시간 자체가 하나의 놀이였다.
포트리스와 유즈맵, 즐기는 게임도 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PC방에서 즐기는 게임도 다양해졌다.
2000년대 초반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도 나는 친구들과 PC방을 자주 찾았다.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즐겼지만 포트리스 같은 게임도 많이 했고, 이후에는 워크래프트 3를 비롯해 다양한 게임을 접하게 됐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유즈맵 문화다.
정해진 게임 방식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맵과 규칙을 친구들과 찾아서 플레이했다.
워크래프트 3에서는 카오스나 도타 같은 유즈맵도 즐겼다.
지금은 MOBA라는 하나의 거대한 게임 장르가 자리 잡았지만, 당시 내가 접했던 카오스와 도타는 워크래프트 3 안에서 실행해 즐기는 유즈맵이었다.
게임 하나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몇 시간씩 친구들과 놀 수 있었다.
PC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몇 년 사이 훨씬 다양해진 것이다.
밤을 새우며 온라인게임을 하던 시절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온라인게임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나 역시 친구들과 PC방에서 밤을 새우며 게임을 했던 기억이 많다.
리니지2가 등장한 뒤에는 친구와 함께 밤새 게임을 하기도 했고, 트라비아 같은 온라인게임도 즐겼다. 주변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빠져 PC방을 찾는 친구들도 있었다.
PC방에서 유행하는 게임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바람의나라와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시절이 있었고, 포트리스를 즐기던 때가 있었으며, 유즈맵과 MMORPG를 밤새 즐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게임이 바뀌어도 한 가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기 위해 PC방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특정 게임의 인기만으로 PC방의 역사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의 열풍이 지나간 뒤에도 새로운 게임들이 계속 등장했고, 하나의 게임이 유행하면 또 다른 게임이 그 자리를 이어갔다.
담배 냄새가 가득했던 옛날 PC방
게임뿐 아니라 PC방의 환경도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다.
내가 처음 PC방을 다니던 1990년대 후반에는 지금과 같은 전면금연 환경이 아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PC방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옷과 머리카락에 담배 냄새가 밸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PC방에서 게임을 했을 뿐인데 집에 돌아가면 어른들이
“너 혹시 담배 피웠냐?”
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정도로 당시 PC방과 담배 냄새는 떼어놓기 어려운 기억이다.
이후 PC방에는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을 나누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간접흡연 문제는 계속됐다.
결국 2013년 6월부터 PC방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지금의 밝고 깨끗한 PC방을 보면 예전 PC방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컵라면에서 ‘PC방 맛집’으로
개인적으로 지금의 PC방을 볼 때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음식이다.
예전에도 PC방에서 컵라면이나 과자, 음료수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라면은 물론이고 볶음밥과 덮밥, 튀김류와 각종 간식 등 상당히 다양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PC방이 생겼다.
자리에서 게임을 하다가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PC방 맛집’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1998년 처음 PC방을 찾았던 내가 지금 PC방의 메뉴판을 본다면 아마 컴퓨터보다 메뉴 종류에 먼저 놀랄 것 같다.
이 변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PC방이 더 이상 게임만 하기 위해 찾아가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임만 하는 곳에서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현재의 PC방은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PC방과 상당히 다르다.
컴퓨터 성능은 좋아졌고 모니터와 의자, 실내 환경도 훨씬 쾌적해졌다.
게임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다.
친구들과 함께 가기도 하고 연인과 데이트를 하면서 이용하기도 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가족이 함께 방문하기에도 훨씬 편한 공간이 됐다.
1990년대 후반의 PC방은 솔직히 지금처럼 누구에게나 편하게 권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게임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PC방은 시대가 변하면서 계속 자신의 모습을 바꿔왔다.
PC방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했다
1998년 처음 PC방을 찾았을 때 나는 그곳에서 바람의나라와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한 시간에 약 1,000원을 내고 게임을 하고, 종일권을 받은 날에는 설치된 게임을 하나씩 실행해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PC방에서 돌아오면 옷에 밴 담배 냄새 때문에 어른들에게 담배를 피웠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고 그 이후까지도 PC방은 계속 찾았다.
포트리스와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워크래프트 3의 유즈맵을 즐기고, 친구와 밤을 새우며 온라인게임을 했다.
그동안 PC방에서 유행하는 게임도, 컴퓨터도, 사람들의 이용 방식도 계속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의 PC방에서는 게임뿐 아니라 음식을 먹고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가끔 예전 PC방을 떠올리면 불편했던 점이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마 담배 냄새가 나던 PC방 자체가 그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별다른 약속도 없이 친구들과 PC방으로 향했던 그때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PC방은 우리 세대에게 단순히 컴퓨터를 빌려 게임을 하는 장소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게임을 처음 만났고, 친구들과 경쟁했고, 함께 웃고 떠들며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이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온라인게임으로, 다시 수많은 새로운 게임으로 유행은 계속 바뀌었지만 PC방은 그 변화에 맞춰 자신의 모습도 함께 바꿔왔다.
PC방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춰 계속 변하면서 살아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