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 오락실은 참 이상한 곳이었다.
어른들은 가지 말라고 했고, 갔다가 들키면 혼이 났다. 그런데 그렇게 혼나고도 며칠이 지나면 또 가고 싶었다.
처음 오락실에 갔던 건 아주 어렸을 때였다. 그 시절 오락실에는 《킹 오브 파이터즈 ’95》,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심슨》 같은 게임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게임기마다 서로 다른 화면과 음악이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이 조이스틱과 버튼을 두드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어린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강렬했다.
그래서 혼날 것을 알면서도 오락실을 끊지 못했다.
오락실에 가면 왜 혼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어른들이 오락실을 바라보던 시선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1990년대에는 전자오락실이 청소년 문제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고, 학교 주변 오락실을 규제하거나 단속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오락실에 빠진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강했다.
우리 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락실에 갔다는 사실을 들키면 혼이 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오락실에 갔다가 학원 선생님에게 걸려 혼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모든 집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분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아이에게 500원을 주면서 오락실에서 놀다 오라고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오락실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혼나는데, 어떤 친구는 부모님이 직접 돈까지 주면서 오락실에 보내준다니.
훗날 결혼하고 아내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 역시 어렸을 때 부모님이 오락실에 가서 놀라고 용돈을 주셨다고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오락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생각은 집집마다 꽤 달랐던 모양이다.
어린 나에게 100원은 큰돈이었다
당시 나는 오락실에서 매일 마음껏 게임을 할 정도로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게임을 고르는 기준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100원을 넣었을 때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가.
이게 꽤 중요했다.
한 번은 《마계촌》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 큰맘 먹고 100원을 넣었다. 그런데 게임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게임오버.
화가 났다기보다는 서러웠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렵게 생긴 100원이었는데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으니까.
반대로 오래 할 수 있는 게임은 정말 고마웠다.
《던전 앤 드래곤: 섀도 오버 미스타라》, 당시 우리가 흔히 던전 앤 드래곤 2라고 부르던 게임은 비기를 이용하면 100원으로도 굉장히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다. 잘 풀리는 날에는 두 시간 가까이 게임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트라이커즈 1945》도 기억난다.
나는 100원을 넣으면 3스테이지까지 가기도 힘들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은 같은 100원으로 6스테이지까지 올라갔다.

같은 돈을 넣었는데 누군가는 몇 분 만에 끝나고 누군가는 한참을 하는 것이 어린 마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2,000원을 들고 오락실에 갔던 날
용돈을 받는 날은 달랐다.
어느 날 손에 2,000원을 들고 오락실에 갔다. 평소의 나에게는 꽤 큰돈이었다.
그날 선택한 게임은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였다.

죽으면 다시 100원을 넣었다.
또 죽으면 다시 넣었다.
평소 같으면 게임오버 화면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겠지만 그날만큼은 계속 이어서 했다.
그렇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까지 게임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몇 명 모여 있었다.
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락실에서는 가끔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평소 보기 힘든 후반 스테이지까지 올라가거나 엔딩에 가까워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서 뒤에서 구경했다.
지금은 게임 영상을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다른 사람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였다.
나에게는 게임의 엔딩만큼이나 내 뒤에 사람들이 서서 내가 하는 게임을 구경하고 있었다는 그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저금통과 버스비까지 오락실로 갔다
오락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돈이 없었던 날도 많았다.
한번은 오락실에 갈 돈을 만들겠다고 저금통을 건드렸다가 고모에게 걸려 크게 혼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만큼 오락실에 가고 싶었다.
더 크게 사고를 친 적도 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사촌형과 함께 사촌형 집에 가던 날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촌형 집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였다.
그런데 둘이서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냥 걸어가면 버스비가 남잖아?”
그리고 남은 버스비로 오락실을 가기로 했다.
어린 우리에게는 꽤 훌륭한 계획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그 거리가 걸어서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둘이 한참을 걸어가면서 결국 아낀 버스비는 오락실에서 써버렸다.
그동안 어른들은 난리가 났다.
버스를 탔다면 진작 도착했어야 할 아이들이 두 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제대로 몰랐지만,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아이 둘이 연락도 없이 두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걱정했을까.
하지만 어린 우리에게 중요했던 계산은 하나뿐이었다.
버스를 안 타면 오락실에서 몇 판을 더 할 수 있었다.
공략은 인터넷이 아니라 친구에게 배웠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검색해서 공략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게임을 잘하는 방법은 대부분 친구에게 배웠다.
잘하는 친구가 게임을 하면 뒤에서 구경했다. 새로운 비기를 알게 되면 친구들끼리 알려줬다. 어디선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다음 날 오락실에서 직접 시험해봤다.
《던전 앤 드래곤 2》도 그랬다.

우리가 자주 다니던 오락실에서는 어느 순간 우리가 사용하던 비기를 쓸 수 없게 해놓았다.
그런데 다른 동네 오락실에서는 그 비기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친구들과 그 오락실을 찾아갔다.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다른 동네였다.
지금 생각하면 게임의 비기 하나 쓰겠다고 어린애들이 30분 넘게 걸어 다른 동네 오락실까지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캡틴 코만도》나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처럼 친구들과 함께 즐기던 게임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혼자서는 쉽게 가지 못했던 곳까지 친구들과 함께하면 조금 더 갈 수 있었고, 한 명이 잘하면 옆에 있던 친구까지 덩달아 신이 났다.
어쩌면 그 시절 오락실의 공략집은 게임기 뒤에 서 있던 친구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락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갈 무렵에는 내가 느끼는 오락실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린 시절에는 몰래 들어갔다가 어른에게 들키면 혼날 것 같은 공간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 당당하게 놀러 가는 곳에 가까워졌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게임들이 있었다.
《DDR》 같은 댄스게임이 등장했고, 《펌프 잇 업》과 《EZ2DJ》 같은 게임도 인기를 끌었다.
조이스틱과 버튼만 사용하던 게임과 달리 직접 발로 움직이거나 음악에 맞춰 플레이하는 게임들이 오락실 한쪽을 차지했다.
노래방 기기도 들어왔다.
친구들과 오락실에 가면 누군가는 대전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펌프를 하고,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기억하던 오락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오락실이 단순히 게임기만 모여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PC방으로 향했다
그 무렵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간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PC방이었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여러 PC게임과 온라인게임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오락실보다 PC방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오락실이 줄어든 이유를 PC방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가정용 게임기와 PC의 보급, 비싸지는 아케이드 기판과 오랫동안 크게 오르지 못한 이용요금 등 여러 변화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했다.
PC방을 자주 가기 시작하면서 오락실에 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혼나면서도 찾아갔던 곳인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발길이 뜸해졌다.
혼나면서도 왜 그렇게 오락실에 갔을까
결혼한 뒤 아내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이 오락실에 가라고 용돈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전에 아버지 친구분의 아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아이들이 정말 부러웠다.
나는 오락실에 갔다가 들키면 혼났고, 학원 선생님에게도 혼났고, 오락실에 갈 돈을 마련하려고 저금통을 건드렸다가 고모에게도 혼났다.
사촌형과는 버스비 몇 푼을 아끼겠다고 두 시간 가까이 걸어가 어른들의 속을 태우기도 했다.
그런데도 또 갔다.
생각해보면 당시 오락실에서 대단한 것을 얻은 것도 아니다.
100원을 넣었다가 5분 만에 게임오버가 되기도 했고, 엔딩을 보지 못한 게임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친구들과 게임기 앞에 붙어 있던 시간, 잘하는 친구 뒤에서 공략을 배우던 시간, 어렵게 모은 동전 몇 개를 손에 쥐고 무슨 게임을 할지 고민하던 순간은 이상할 만큼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은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그렇게 소중하게 바라볼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100원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료였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오락실 자체보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만 손에 쥐어도 어디로 뛰어갈지 설레던 그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