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집에 처음으로 PC가 생겼다.
새로 산 컴퓨터는 아니었다. 작은아버지가 사용하시던 PC를 나에게 주셨고, 그렇게 우리 집에도 처음으로 컴퓨터가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오래된 컴퓨터였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컴퓨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언제든 내가 직접 컴퓨터를 켜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게임도 접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게임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특별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게임이 하나 있다.
내 용돈을 조금씩 모아 처음으로 직접 샀던 PC게임, 파랜드 택틱스2였다.
당시 부산 수영로터리에 있던 전자랜드에서 샀는데, 가격은 22,000원이었다. 어린 나에게 22,000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갖고 싶은 게임을 사기 위해 용돈을 조금씩 모았고, 그렇게 직접 돈을 내고 게임 패키지를 손에 넣었다.
지금처럼 클릭 몇 번으로 게임을 구매하고 바로 다운로드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매장에 가서 진열된 게임 패키지를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게임을 골라 계산한 뒤 그 패키지를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파랜드 택틱스2는 단순히 재미있게 했던 게임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작은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우리 집의 첫 PC, 모아두었던 용돈 22,000원, 전자랜드에서 사 들고 왔던 게임 패키지.
그 기억들이 모두 파랜드 택틱스2라는 게임과 함께 남아 있다.
파랜드 택틱스2는 어떤 게임이었나
파랜드 택틱스2는 일본의 게임 개발사 TGL이 만든 시뮬레이션 RPG다. 일본에서는 ‘파랜드 사가2: 시간의 이정표’라는 이름으로 출시됐고, 국내에서는 ‘파랜드 택틱스2: 시간의 이정표’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됐다.
게임은 여러 캐릭터를 움직여 적과 전투를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캐릭터마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특징이 달랐고, 전투를 거듭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 보면 아기자기한 그래픽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당시에는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화려한 기술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전투 사이사이에 이어지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대화를 보는 재미도 컸다.
무엇보다 내가 이 게임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식 한글화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게임 속 이야기를 한글로 읽으며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꽤 중요했다. 캐릭터들이 왜 싸우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이해하면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랜드 택틱스2의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며 플레이하다 보니, 어느새 전투를 이기는 것만큼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졌다.
한글로 즐기던 PC 패키지게임
지금은 해외에서 출시된 게임도 다양한 방법으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한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 파랜드 택틱스2처럼 이야기를 따라가는 RPG에서는 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게임에 몰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캐릭터들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가 다음 전투로 이어졌다. 단순히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 안의 캐릭터들을 직접 성장시키는 느낌이 있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캐릭터가 조금씩 강해지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더 많이 사용하게 됐고, 그렇게 키운 캐릭터가 전투에서 활약하면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공략 영상이나 정보를 바로 찾아볼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몇 번이고 다시 해보고, 캐릭터를 다르게 키워보면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과정에서 유독 기억에 남은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목욕 이벤트를 보기 위해 찾아낸 나만의 방법
파랜드 택틱스2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초반에 등장하는 목욕 이벤트였다.

목욕 이벤트를 보지 않고 지나가면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벤트를 보고 나면 여자 캐릭터들이 적으로 등장하는 전투가 이어졌고, 처음에는 그 전투를 넘기지 못해 게임오버를 당하곤 했다.
그렇다고 이벤트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번 실패하다 보니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냈다. 목욕 이벤트가 나오기 전까지 여자 캐릭터들은 일부러 많이 성장시키지 않고, 남자 주인공인 알을 집중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플레이하니 이벤트 이후 여자 캐릭터들이 적으로 등장하더라도 성장시켜 둔 알로 상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터넷에서 공략을 찾아본 것도 아니고, 몇 번의 실패 끝에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나름의 공략법을 만들어낸 셈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장면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목욕 이벤트를 봤다는 기억이 아니라, 그 이벤트를 보고도 게임을 계속 진행하고 싶어서 캐릭터의 성장 방법까지 바꿔가며 플레이했던 기억이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파랜드 택틱스2를 떠올리면
그 이후로 정말 많은 게임을 했다. 재미있게 했던 게임도 많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게임도 많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 용돈을 모아 직접 샀던 PC게임은 하나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 우리 집에 PC가 생겼던 시절. 모아두었던 용돈 22,000원을 가지고 수영로터리 전자랜드에서 파랜드 택틱스2를 샀던 기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집으로 돌아와 게임을 설치하고, 캐릭터들을 하나씩 키우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목욕 이벤트를 보고 난 뒤의 전투를 이겨보겠다고 알을 집중적으로 키웠던 것도 이제는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지금 다시 플레이한다면 그때와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게임을 보는 눈도 달라졌고, 게임을 즐기는 환경도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파랜드 택틱스2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래픽이나 전투 시스템이 아니다.
용돈을 모으던 시간, 전자랜드에서 게임을 골랐던 순간, 그리고 새로 생긴 PC 앞에 앉아 처음으로 내가 산 게임을 실행했던 초등학교 6학년의 나다.
그래서 나에게 파랜드 택틱스2는 단순한 옛날 게임이 아니다.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샀던 PC게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