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PC게임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서점의 게임잡지 코너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게임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시절, 게임잡지는 새로운 게임의 소식을 접하고 공략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통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게임잡지를 고르는 기준에 하나가 더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는 어떤 게임을 부록으로 주지?”
처음에는 데모게임이나 각종 프로그램이 담긴 CD-ROM이 잡지와 함께 제공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품 게임이 부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게임잡지가 경쟁하면서 부록으로 제공되는 게임 역시 점점 화려해졌다.
독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게임 하나를 따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잡지와 게임을 함께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게임피아 1998년 1월호의 부록으로 삼국지 영걸전을 만났고, 당시에는 그저 잡지를 사면 게임까지 따라온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 당시의 게임잡지 시장을 다시 살펴보면, 우리가 기다렸던 그 부록 CD는 게임잡지들의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게임잡지들은 왜 그렇게 좋은 게임들을 부록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한때 서점의 한쪽을 가득 채웠던 게임잡지들은 왜 하나둘 사라지게 된 것일까.
인터넷이 없던 시절, 게임 정보는 잡지에 있었다
1990년대에는 지금처럼 궁금한 게임의 이름을 검색해 영상이나 공략을 바로 찾아볼 수 없었다.
새로운 게임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게임을 하다가 막히면 공략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서 당시 게임잡지는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게임 정보를 얻는 중요한 통로였다.
잡지에는 새로 출시되는 게임의 소개와 리뷰, 공략은 물론이고 개발 소식과 각종 게임 관련 정보가 실렸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게임도 잡지에 실린 몇 장의 화면과 설명을 보면서 어떤 게임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여러 게임잡지가 등장했다. 그중 게임피아는 1995년 KBS문화사업단이 창간했으며, 당시 보도를 보면 잡지와 함께 제공되는 CD-ROM에는 국내외 게임의 데모와 동영상, 각종 유틸리티 등이 수록됐다.
처음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정품게임 한 편을 통째로 주는 형태의 부록 경쟁이었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게임잡지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록 CD의 성격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데모 CD에서 정품게임 부록으로
초기의 게임잡지 부록 CD는 데모게임이나 동영상, 유틸리티처럼 잡지의 내용을 보완해주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록 CD에 정품게임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클 수밖에 없었다. 잡지 한 권 가격으로 읽을거리뿐 아니라 실제 게임까지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게임잡지들 사이에서도 어떤 게임을 부록으로 제공하느냐가 잡지의 중요한 경쟁력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출시된 지 시간이 지난 게임들이 주로 등장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게임들이 부록으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당시 게임잡지의 부록을 통해 워크래프트 2, 디아블로, 문명, 파랜드 택틱스, 발더스 게이트 2,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같은 게임들을 직접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한 작품들이 잡지 부록으로 따라왔던 셈이다. 당시에는 어느 순간 잡지의 내용만큼이나 “이번 달에는 어떤 게임이 부록으로 나올까?”를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독자들은 잡지의 기사와 공략뿐 아니라 “이번 달 부록게임은 무엇인가”를 보고 잡지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졌다.
누가 더 좋은 게임을 주느냐, 부록 경쟁의 시작
정품게임이 부록으로 등장하면서 게임잡지들의 경쟁 방식도 달라졌다.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다른 잡지보다 더 유명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부록으로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잡지마다 더 좋은 게임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독자 입장에서는 즐거운 경쟁이었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게임이 부록으로 등장하면 그달에는 평소 사던 잡지가 아니라 다른 잡지를 선택하기도 했다. 잡지보다 부록게임을 먼저 확인하는 사람도 생겼다.
경쟁이 계속되면서 부록게임의 수준도 점점 높아졌다. 한때 정식 패키지로 판매됐던 유명 게임들이 잡지 가격에 함께 제공되는 일이 이어졌다.
하지만 잡지사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좋은 게임을 부록으로 제공하려면 해당 게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야 했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에 따른 비용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독자들에게는 ‘잡지를 사면 게임을 하나 더 얻는 황금기’처럼 보였던 시기가, 잡지사들에게는 갈수록 부담스러운 경쟁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록 경쟁은 결국 잡지사에게 부담이 됐다

독자들에게 정품게임 부록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잡지사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게임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경쟁 잡지가 유명 게임을 부록으로 내놓으면 다음 달에는 그에 못지않은 게임을 준비해야 했다. 부록이 잡지 판매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서 쉽게 경쟁에서 빠져나오기도 어려웠다.
당시 게임잡지의 역사를 돌아본 자료에서도 이런 부록게임 경쟁이 과열되면서 게임 판권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이 잡지사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경쟁이 한번 시작된 뒤였다.
독자들은 점점 더 좋은 부록을 기대했고, 잡지사들은 그 기대에 맞추기 위해 다시 새로운 게임을 확보해야 했다. 잡지의 기사와 공략으로 경쟁하던 시장에서 어느 순간 부록게임 자체가 판매 경쟁의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게임잡지가 사라진 이유를 부록 경쟁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비슷한 시기에 게임 정보를 접하는 방법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을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인터넷이 게임잡지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게임 정보를 얻는 방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새로운 게임의 소식이나 공략을 보려면 다음 달 게임잡지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새로운 정보가 올라오면 훨씬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다.
게임 관련 웹사이트와 커뮤니티가 생겨나면서 이용자들은 새로운 게임의 소식과 공략을 온라인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른 이용자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가능해졌다.
게임잡지가 가지고 있던 ‘게임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인터넷이 조금씩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부록게임 경쟁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게임 유통 환경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종이 게임잡지가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따라서 1990년대와 2000년대 게임잡지의 쇠퇴를 단순히 “부록 CD 경쟁 때문에 모두 망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부록 경쟁의 과열도 하나의 부담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 매체의 등장과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때 새로운 게임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창구였던 게임잡지는 조금씩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갔다.
게임잡지가 남긴 것
지금은 게임잡지가 없어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새로운 게임의 소식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검색 몇 번으로 공략을 찾을 수 있다. 게임 영상도 직접 플레이하기 전에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잡지가 중심이던 시절에는 지금과는 다른 기다림이 있었다.
새로운 잡지가 나오는 날을 기다리고, 서점에서 표지를 살펴보고, 집에 돌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지를 넘겼다. 마음에 드는 게임의 공략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부록 CD에 어떤 게임이 들어 있는지도 큰 관심거리였다.
특히 치열했던 정품게임 부록 경쟁은 당시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겼다.
잡지 한 권을 샀을 뿐인데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게임이 손에 들어오기도 했고, 전혀 모르던 게임을 부록으로 만나 오랫동안 즐기기도 했다.
나에게도 게임피아의 부록으로 만난 삼국지 영걸전이 그런 게임이었다.
결국 게임잡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과거와 같은 자리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그 잡지를 기다리고 한 장씩 넘기며 새로운 게임을 발견했던 경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 시절 게임잡지를 기억하는 이유는 잡지 자체보다, 다음 달에는 어떤 게임을 만나게 될지 기다리던 그 설렘 때문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