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학교가 끝나면 우리는 PC방으로 달려갔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달려갔던 PC방. 헌터와 저글링 블러드, 서비스 시간까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했던 그 시절의 추억을 다시 꺼내봅니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게임이 한국의 게임 문화를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PC방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타크래프트를 실행했다. 집에서 지금처럼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시절, PC방은 친구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오늘은 누가 이길까?”

테란을 고르는 친구도 있었고, 저그만 고집하는 친구도 있었다. 프로토스의 강력한 유닛을 좋아했던 친구도 있었다. 실력 차이는 있었지만 게임 한 판을 두고 웃고 떠들었던 기억은 비슷하다.

시간이 흘러 게임을 즐기는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스타크래프트를 실행했을 때 들리던 음악과 유닛들의 익숙한 소리를 들으면 그 시절의 PC방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이번 이야기는 단순히 오래된 게임 하나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했던 그 시절의 게임 문화를 다시 한번 꺼내보려 한다.

스타크래프트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해 1998년 출시한 실시간 전략 게임이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라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세 종족이 등장했고, 자원을 모아 건물을 짓고 병력을 생산해 상대와 싸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에도 전략 게임은 존재했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세 종족의 개성이 뚜렷했다. 같은 맵에서 게임을 시작해도 어떤 종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영 방식과 전투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가 특별한 게임이 된 이유는 게임 자체의 재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함께 PC방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러 대의 컴퓨터가 연결된 PC방은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였고, 스타크래프트의 멀티플레이는 이런 환경과 잘 맞았다.

친구 몇 명이 PC방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같은 게임에 접속했다. 1대1로 실력을 겨루기도 하고, 팀을 나눠 여러 명이 함께 싸우기도 했다. 잘하는 친구 뒤에 모여 플레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스타크래프트는 혼자 즐기는 PC게임을 넘어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가 되어갔다.

학교가 끝나면 PC방으로

나에게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히 유명했던 옛날 게임이 아니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게임 중 하나다.

당시 부산 수영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학교 근처 PC방을 자주 찾았다. 지금처럼 어디에서나 쉽게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은 우리에게 작은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자리에 앉으면 가방부터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타크래프트를 실행했고, 친구들이 모두 준비되면 같은 방에 모여 게임을 시작했다.

“빨리 들어와.”
“잠깐만, 아직 로딩 중이야.”
“이번에는 같은 편 하자.”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일을 했던 것도 아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과 몇 시간 동안 스타크래프트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 속에서 어떤 승부를 했는지는 희미해져도, 학교를 나와 친구들과 PC방으로 향하던 그때의 풍경은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게임이 시작되면 분위기는 금세 진지해졌다. 내 화면을 보다가 옆자리 친구의 화면을 슬쩍 쳐다보기도 하고, 먼저 탈락한 친구는 어느새 뒤에서 구경하며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거기 아니야!”
“병력부터 뽑아!”
“뒤에 온다, 뒤에!”

그러다 게임이 끝나면 꼭 누군가 말했다.

“한 판만 더 하자.”

분명 마지막 판이라고 시작했는데 또 한 판이 이어지고, 어느새 집에 가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 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는 스타크래프트는 모니터 안의 게임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 PC방을 가득 채우던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 게임을 구경하며 웃었던 순간까지 모두 합쳐져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PC방에서 함께하던 친구도 있었지만 집에서 접속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빠른 인터넷 환경이 당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 한 판을 시작하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로딩이 유난히 오래 걸리는 친구가 있으면 “야, 몇 번 만에 들어온 거냐?”며 놀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접속이 불안정하면 다 같이 기다리다가 결국 다시 방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몇 초만 늦어도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그런 기다림조차 친구들과 게임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돌이켜보면 느린 로딩과 접속을 기다리며 떠들던 시간까지 스타크래프트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1990년대 후반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PC방으로 향하던 모습

헌터와 저글링 블러드, 그리고 서비스 시간

당시 내가 다니던 부산 수영중학교 근처 PC방에는 이용한 시간을 누적해 서비스를 주는 제도가 있었다. 10시간을 채우면 1시간을 서비스로 받을 수 있었고, 100시간을 채우면 하루 종일 PC방을 이용할 수 있는 무료이용권을 줬다.

중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서비스 1시간도 꽤 크게 느껴졌는데, 100시간을 채우고 받을 수 있는 종일 무료이용권은 그야말로 특별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친구들과 누적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면서 조금씩 시간을 채워가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100시간이라는 시간을 PC방에서 보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때는 그만큼 친구들과 함께 게임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헌터에서 편을 나눠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지겨워지면 저글링 블러드 같은 유즈맵으로 넘어가다 보면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어렵게 받은 종일 무료이용권으로 하루를 PC방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당시의 우리에게는 꽤 큰 이벤트였다.

지금은 게임의 승패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학교가 끝나면 함께 PC방으로 향하던 친구들, 조금씩 쌓이던 이용시간, 서비스로 받은 한 시간, 그리고 언젠가 받을 종일 무료이용권을 기다리던 마음.

어쩌면 게임추억이라는 것은 게임 자체보다 그 게임을 즐기던 시절의 우리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 — 당신의 종족은 무엇이었나요?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선택이 있었다. 바로 테란, 저그, 프로토스 가운데 어떤 종족으로 플레이할 것인가였다.

신기하게도 친구들마다 좋아하는 종족이 달랐다. 한번 마음에 든 종족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테란을 좋아하는 친구는 벙커와 탱크로 자리를 잡고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플레이를 즐겼다. 방어가 단단해지기 시작하면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좀처럼 뚫기가 쉽지 않았다.

저그를 선택한 친구는 달랐다.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저글링이 몰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제대로 준비하기도 전에 기지를 휘젓고 다니는 저글링을 보며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프로토스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강력한 유닛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을 좋아했다. 질럿과 드라군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대규모 병력이 완성됐을 때의 든든함도 프로토스만의 매력이었다.

물론 실제 게임에서는 훨씬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존재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즐기던 우리에게는 복잡한 빌드보다도 “나는 이 종족이 제일 좋다”라는 취향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를 오래 즐긴 사람이라면 지금도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주 종족은 무엇이었나요?

배틀넷,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의 첫 대결

친구들과 PC방에서 즐기던 스타크래프트의 재미를 더 넓혀준 공간이 바로 배틀넷이었다.

같은 PC방에 있는 친구뿐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인터넷을 통해 대결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에는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방을 만들고 상대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거나, 마음에 드는 방을 찾아 들어가 게임을 시작했다.

상대가 어떤 실력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할 때의 긴장감도 컸다. 친구들과 할 때는 서로의 실력과 습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배틀넷에서 만난 상대는 무엇을 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배틀넷에는 승부를 겨루는 게임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유즈맵(Use Map Settings)을 즐기는 재미도 커졌다. 정해진 방식대로 상대 기지를 파괴하는 일반적인 대전에서 벗어나, 누군가 만든 새로운 규칙과 맵으로 전혀 다른 게임처럼 즐길 수 있었다.

디펜스와 RPG, 각종 미니게임 등 수많은 방식의 맵이 만들어졌고, 재미있는 유즈맵을 발견하면 친구들에게 알려주거나 PC방에서 함께 플레이하곤 했다.

스타크래프트는 그렇게 하나의 게임 안에서 또 다른 놀이가 계속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어갔다.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PC방 안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이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을 TV로 보기 시작했다. 게임 전문 방송에서 프로게이머들의 경기가 중계됐고, 선수들의 이름과 주 종족, 플레이 스타일을 기억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도 프로게이머의 전략을 따라 해보곤 했다. 방송에서 본 빌드를 흉내 내거나 멋진 컨트롤을 따라 해보려 했지만, 막상 직접 해보면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게임을 직접 하지 않는 날에도 경기를 보고, 다음 날 친구들과 전날 경기 이야기를 나눴다. 스타크래프트는 어느새 단순히 플레이하는 게임을 넘어 보고 이야기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었다.

특히 수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프로게이머의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 기업이 프로게임단을 후원하고 대규모 리그가 열리면서,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프로게이머’ 역시 대중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갔다.

스타크래프트는 그렇게 한국의 PC방 문화와 함께 성장했고,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e스포츠라는 문화를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게임으로 남게 됐다.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 방송 경기의 모습. 사진: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지금 다시 스타크래프트를 켜보면

지금 다시 스타크래프트를 실행하면 예전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그래픽도, 게임을 즐기는 환경도 지금의 게임들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익숙한 배경음악이 들리고 일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오래전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학교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시간, 친구들과 PC방으로 향하던 길, 옆자리에서 들려오던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 게임에서 지고도 다시 한 판 하자며 웃었던 친구들의 모습까지.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게임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그때의 공간, 그리고 게임 한 판만으로도 하루가 즐거웠던 그 시절의 우리 자신을 함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게임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스타크래프트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각자의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게임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음악 한 소절이나 시작 화면 하나만 보아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게임.

게임추억은 앞으로도 그런 게임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다시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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